위스키

위스키, 제대로 알고 마시자 - 위스키의 역사(1)

위스키다이어리 2022. 11. 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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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위스키의 어원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시피 위스키는 라틴어 "Aqua Vitae(아쿠아 비타이)" 혹은 게일어 "Uisce Beatha(우스게 바하)" 즉 "생명의 물"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생명의 물, 즉 연금술의 시대에 증류주를 의미합니다. 연금술을 수행했던 수도사들이 금을 제련하거나 약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면서 그 과정에서 증류주를 찾아낸 것입니다. "물처럼 투명하지만 향긋한 향이 나고,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으며,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신비한 물" 즉, 술은 당시에는 생명의 물이랑 칭호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죠. 이러한 증류주는 약용으로 사용되면서 생명의 물로 불려 왔습니다.

 

이러한 위스키는 금주법가 밀주, 세금과 면허, 정치와 국제 정세 등의 영향을 받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해왔습니다.

6세기, 위스키의 시작, Uisce Beath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동방의 증류 기술이 서양에 전달됩니다. 이러한 증류 기술을 전달받은 서양의 수도승들은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의의로 목적으로 다양한 곡물을 활용하여 신비한 생명의 물을 만듭니다. "Uisce Beatha", "Uisge Beatha", "Usque Baugh" 모두 6세기경 초기 켈트 교회의 수도승들이 의료 목적으로 제조한 증류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약용으로 사용되던 이 "우스게 바하"가 후에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전파되면서 오늘날의 위스키가 되었다고 합니다. 

* 1754년, WHISKEY의 첫 등장

1754년 런던에서 발간된 <The Gentleman's Magazine(젠틀맨스 매거진)>이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있는 한 술집을 소개하며 "WHISKEY"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잡지에서 위스키를 소개하기 이전에는 1618년 "UISKIE", 1754년에는 "USKY"라고 쓰인 기록만 남아있는데, 드디어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WHISKEY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1785년에는 스코틀랜드식 단어인 "WHISKY"도 등장합니다. 바로 새뮤얼 존슨 영영 사전의 여섯 번째 개정판에 이르러서야 이 단어가 비로소 등장하는 것입니다.

 

1707년 , 위스키 수난의 시작 <맥아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해 대영제국이 탄생하게 되면서 위스키의 수난도 시작됩니다.

잉글랜드에서만 시행되던 몰트세를 지배국인 아일랜드에 부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인이 합법적으로 위스키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특정 면허나 자격증을 획득해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스키의 원료인 맥아(몰트)에도 세금을 매겨 불법 증류주들이 성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는 맥아를 피해 보리로 증류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 위스키만에 특색을 갖게 됩니다.

1713년부터는 이러한 몰트세가 스코틀랜드에도 부과하게 되어 스코틀랜드 디스틸러들 또한 폭동을 일으키고, 일부는 다른 곡물을 섞는 형태로 밀주를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위스키의 향과 색이 더욱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가장 주요한 특징을 갖게 되는데요, 원래는 햇빛 아래에서 자연건조를 해 오던 몰트를 산에서 몰래 건조해야 했기 때문에 본연의 맛을 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디스틸러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탄(Peat, 피트)을 태워 그 열기로 몰트를 말렸고, 이러한 과정으로 지금의 우리는 피트 향이 더해진 위스키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824년, 디스틸러들의 합법화, 그리고 오크통의 시작

1789년~1794년 사이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영국 정부 또한 이러한 전쟁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세를 3배씩이나 올립니다. 높은 세금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에서는 밀주가 더욱 횡행했고 증류소들은 경영난을 맞아 하나둘씩 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823년 소비세법이 개정되면서 면허세를 낸다면 합법적인 양조가 가능해졌고 1824년에는 스코틀랜드의 디스틸러 Speyside(스페이사이드) 증류소를 시작으로 다양한 양조장들에서 이러한 면허를 취득하여 주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자신만의 위스키를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때까지도 허가를 받지 못한 증류소들도 많았는데요, 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술을 제조하던 증류 업자들은 위스키를 시장에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재고 회전도 빠르지 않아 술을 보관할 수 있는 저렴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위스키를 보관할 통을 찾다가 스페인에서 셰리 와인을 수입할 때 사용한 오크통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육지책으로 찾아낸 저렴한 오크통은 위스키에 새로운 맛과 향을 추가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오크통이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디스틸러들에게도 새로운 저장고가 나타난 것입니다.

 

1842년, IB(Independent Bottling)의 등장

Independent Bottling, 즉 독립 병입 위스키가 등장합니다. 증류소를 직접 소유/운영하지는 않지만 디스틸러들에게 오크통 자체를 구매한 후 자체적으로 병입을 하여 판매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때문에 저장의 효율을 늘리기 위해 디스틸러들은 오크통 보관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러한 증류소들은 브랜드 관리와 유통이 어려웠는데요, 이런 증류소들의 사정을 파악하고 틈새시장을 노린 중개인들이 등장합니다. 1842년에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의 Cadenhead's(케이든 헤즈)가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고, 이후 Gordon&MacPhail(고든 액 맥파일), 더글라스 랭 등 굵직한 독립 병입 회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디스틸러들이 개발한 위스키의 원액을 발굴하거나 숙성해서 그 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그 자체를 긴 시간 보관해서 빈티지 컬렉션으로 출시하여 위스키 시장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조금 위스키의 역사를 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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